자막이 없으면 아예 들어갈 수 없는 시장이 늘고 있다. 청각장애인용 자막(SDH)을 의무로 규정하는 정책이 나라마다 생기면서다. 자막은 이제 콘텐츠에 곁들이는 부가 요소가 아니라, 유통을 시작하기 위한 전제 조건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책이 자막을 '의무'로 바꾸는 중이다
미국은 2010년 제정한 CVAA(21세기 통신·비디오 접근성법)로, TV에서 자막과 함께 방영된 프로그램은 인터넷으로 재유통될 때도 같은 수준의 자막을 붙이도록 요구해 왔다. 여기에 더해 온라인 영상의 자막 접근성 기준(쉽게 켜고 찾고 미리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의 최종 준수 기한이 2026년 8월로 정해졌다(미국 연방통신위원회). 국내도 같은 방향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26년 6월 장애인방송 접근권 고시를 개정하며, 그동안 방송사 중심이던 폐쇄자막·화면해설·한국수어 제공 의무를 넷플릭스·티빙 같은 OTT 사업자에게도 노력 의무로 새로 넣었다. 자막을 언제 붙일지가 제작사 재량에서 규정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수출이 커질수록 접근성 기준도 따라온다
K-콘텐츠 수출은 2025년 149억 582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5.9% 늘었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6년 4월 발표). 콘텐츠가 해외로 나가는 만큼, 그 나라의 접근성 규정도 함께 따라붙는다. 자막을 갖추지 못한 콘텐츠는 특정 시장의 문 앞에서 멈추는 일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SDH가 국내용 부가 서비스에서 해외 유통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유다.
그래서 SDH는 손이 더 많이 간다
SDH는 대사만 옮기는 일반 자막과 다르다. 누가 말하는지, 화면 밖 소리가 무엇인지, 문 두드리는 소리나 배경 음악 같은 비언어 정보까지 자막으로 담아야 한다. 정보는 빠뜨리지 않되 화면을 읽는 흐름은 끊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해서, 기계가 일괄로 처리하기 어렵다. 사람이 장면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대목이 많다.
늘어난 물량을 지금 감당하고 있나
닐리리아는 자막을 9개 언어로 88,748건 제작했고, 지금은 10개 언어를 상시 지원한다. SDH도 정확성을 보는 1차, 표현과 현지화를 보는 2차, 포맷과 일관성을 확인하는 3차로 나눈 3단계 QA를 그대로 거치고, 이 과정에서 수정요청률은 5% 미만으로 유지된다. 전문 번역가 300명과 프리랜서 1,000명이 넘는 네트워크가 이 물량을 뒷받침한다.
이제 SDH는 콘텐츠를 다 만든 뒤 붙이는 마무리가 아니라, 어느 나라까지 내보낼 수 있는지를 정하는 조건이 됐다. 자막을 누가 어떤 품질로 만드느냐가 곧 콘텐츠가 닿는 시장의 범위를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