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리리아는 2016년 2월 설립됐고, 이듬해인 2017년 청년창업사관학교와 신용보증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에 부족한 건 대개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걸 실제 서비스로 옮길 자금,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줄 기회다. 두 기관의 지원은 번역·현지화라는 사업 모델을 구체적인 형태로 만드는 발판이 됐다.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초기 창업기업 지원 프로그램이고, 신용보증기금은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도 신용을 보고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보증해주는 기관이다. 둘 다 매출이나 업력이 아니라 사업계획과 성장 가능성을 보고 지원 대상을 고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직 실적이랄 게 없던 신생 회사가 이런 기관의 검증을 통과했다는 건, 번역·현지화라는 사업 자체의 구조를 인정받았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번역한다는 원칙
그 무렵 세운 원칙은 지금도 그대로다. 번역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맡는다는 것, 한국 콘텐츠 특유의 결을 살려 세계로 전한다는 것. 이 원칙은 2019년 7월 1세대 유튜브 다국어 자막 플랫폼 컨텐츠플라이 출시로 처음 서비스의 형태를 갖췄고, 이후 전문 번역가 300명 이상과 프리랜서 1,000명 이상 규모의 네트워크, 1차 정확성·2차 표현·3차 최종품질로 이어지는 3단계 QA 공정으로 확장됐다. 초기 지원금이 아이디어를 서비스로 바꿔줬다면, 그다음 몇 년은 그 서비스를 지탱할 사람과 공정을 쌓는 시간이었다.
숫자로 남은 결과
기반을 다진 시간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지금 닐리리아와 함께 일하는 기업 고객은 50곳이 넘고, 계약연장률은 95%, 서비스 만족도는 4.8점이다. 자막은 누적 88,748건, 9개 언어로 처리했다. 콜로소 강의 140,588분, JTBC 콘텐츠 236만 자, MBC WORLD 30,051분 -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연이어 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17년에 다진 기반이 있다. 실적 하나 없던 신생 회사가 대형 프로젝트를 맡기까지, 그 사이를 메운 건 결국 초기에 확보한 시간이었다.
지금 다시 보면
청년창업사관학교와 신용보증기금이 그해 눈여겨본 건 아이디어의 참신함이 아니라, 이 사업이 몇 년 뒤에도 굴러갈 수 있는 구조였을 것이다. 번역·현지화는 화려한 기술 하나로 승부가 나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과 공정을 오래 쌓아야 하는 사업이다. 그 판단에 자금과 신용을 걸어준 두 기관 덕분에, 아직 실적이 없던 시기의 닐리리아는 시장이 검증을 요구하기 전에 그 구조를 먼저 갖출 시간을 벌었다.
K-콘텐츠 수출은 지난해 149억 582만 달러를 넘어서며 전년보다 5.9% 늘었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26년 4월 발표). 콘텐츠가 밖으로 나가는 양이 늘어날수록 그것을 받아줄 언어로 옮기는 일의 물량도 함께 늘어난다. 그 물량을 받아낼 준비는 콘텐츠가 잘 팔리기 시작한 다음이 아니라, 아무도 실적을 묻지 않던 시기에 이미 갖춰둬야 하는 것이다.

